오르세미술관전 관람 준비 ! (조이한,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읽기'를 읽고)

그림에 관심을 둔지는 얼마 되지 않았으나, 최근에는 인상주의에 지대한 관심이 있다. 여름이라 그런가... 빛의 표현에 더욱 더 관심이 간다. 또 예술의전당에서 하는 '20세기 위대한 화가들' 전을 다녀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성균관대 글로벌경영 3학년 1학기 수업 교재 중 하나인 '조이한, 진중권의 천천히 그림읽기' 책을 우연히 과방에서 발견하여 읽게 되었다. 수업은 듣지 않았으나 좋은 내용이 많아 포스팅을 해보고자 한다. 

*주의 : 약간 책에 페미니즘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조금 불쾌할 수도 있겠다. 


-----------------------------------------------------
- 그림을 바라보고있는 나에게 살아서 감동을 주는 작품이 중요하다. 작품은 화가의 산물이다. 하지만 일단 그의 품을 떠나면 작품은 화가의 개인적 전기와 관계없이 자기 자신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 교양인이란 모름지기 예술을 평가할 능력이 있어야 한다.
- 예술에선 무엇을 보다는 '어떻게' 말하느냐가 더 중요하다.
- 그림은 그림으로 보아야 한다. 텍스트와 달리 그림은 글씨가 아닌, 선과 색과 형태로 우리에게 다가오기 때문이다.

- 단 하나의 올바른 해석이라고 하는 것은 없다. 작가가 의도한 어떤 효과는 있겠지만 내가 반드시 그 의도대로 작품을 감상해야만 할 이유도 없다. 그래서 맞다고 하는 해석에 도달하지 못했거나 작가의 의도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을 경우 '틀렸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어떤 경우는 작품을 오해하면서 더 창조적인 해석이 나오기도 한다. 현대 미술에 오면 단 하나의 진리를 강요하지 않는다. 예술은 작품을 보는 내가 있음으로 해서 완성된다. 나는 단지 작가의 의도를 가만히 서서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관람자가 더 이상 아니다. 나의 해석은 작가의 그것보다 더 창조적일 수도 있다. 나는 작품을 창조적으로 읽는다. 창조적 해석을 통하여 나 또한 예술가가 될 수 있다.


-----------------------------------------------------
에두아르 마네, <배>
빛의 흐름과 분위기가 차분하고 편안한 느낌을 준다. 참고로 구글플러스의 프로파일도 에두아르 마네의 작품이다 !

요하네스 베르메르, <금의 무게를 다는 여인>
여인의 손에 들린 저울, 그리고 여인의 뒤로 보이는 최후의 심판 장면. '곧 다가올 신의 영원한 심판의 날을 기억하라'

- 도상학의 세 단계
1. 도상학의 예비 단계 : 아무 생각 없이 그저 그림 속에 무엇이 보이는지를 묘사한다.
2. 도상학의 묘사 단계 : 묘사의 전통과 제제에 대해 가능한 많은 지식이 필요하다.
3. 도상학의 해석 단계 : 그림에 숨겨진 의미를 밝혀 내는 것

- 성경 속 attribute
 어트리뷰트 : 한 인물의 정체를 표시하기 위해 사용되는 사물이나 속성, 그 인물의 전기와 관련이 있다.
 - 베드로 : 열쇠를 든 사람. 성경에서 예수가 천국의 열쇠를 맡겼기 때문. 혹은 칼을 들고 있기도 한다. 유다가 로마 병사를 몰고 예수 앞에 와서 키스할 때 화가 난 베드로가 병사 중 한 명의 귀를 베었다는 일화 때문이다.
 - 요한 : 가장 어리게 묘사된다
 - 사도 바울: 대머리에 두루마리를 든 사람. 두루마리는 각 교회에 보냈던 그의 편지를 가리키는 것
 - 세례 요한 : 기다란 나무 십자가를 들고 양털 옷을 입고 있는 사람
(이외에도)
 - 헤라클레스  사자의 가죽과 함께 묘사된다.

산드로 보티첼리, <봄>
 이 그림은 그저 봄을 나타낸 게 아니라, 봄과 관련된 여러 개의 모티프로써 당대 휴머니스트들의 견해와 주문자의 정치적 의도를 예술적으로 종합한 작품이다. 꽃으로 충만한 아름다운 동산의 도시 피렌체, 항상 푸른빛을 발하며 왕성한 생명력을 자랑하는 워계수, 그리고 이 그림의 주문자, 피렌체를 다스리던 메디치 가문의 조화.

레오나르도 다 빈치, <안나가 그려진 성 모자상>
 책 속의 해설이 너무 좋아 그대로 옮기려 한다. 
"그림에는 갓 한 살이 된 어린 예수가 있다. 그는 어린 양을 잡아 안으려고 어머니인 마리아의 손에서 벗어나고 있다. 마리아는 어린 예쑤를 새끼 양으로부터 뗴어 놓기 위해 성 안나의 무릎에서 막 일어서려는 참이다. 왜냐 하면 그 양은 예수의 수난을 상징하는 희생의 동물이기 때문이다. 이때 성 안나 역시 자리에서 살짝 일어서려고 하는 듯이 보인다. 양을 잡으려는 예수의 행동을 말리려는 마리아를 또다시 말리려는 듯하다. 성 안나의 모습은 아마도 예쑤의 수난이 저지되는 것을 원치 않는 '교회'를 의미하는 듯하다."


- 고흐의 어린 시절 
 첫 아들을 잃은 부모들은 다음에 태어난 자식에 대해 남다른 감정을 갖게 마련이다.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고 하지 않는가. 죽은 아이는 부모의 상상 속에서 점점 이상화된다. 그리하여 부모는 후에 태어난 아이를 죽은 아이와 동일시하여 많은 것을 기대한다. 우연히 같은 날에 태어나 그에게 이름을 물려주었던 형의 존재. 같은 날에 태어나 그의 이름을 물려받아야 했던 동생 고흐. 고흐를 죽은 그의 형과 동일시하는 부모의 태도. 고흐의 작품이 보여 주는 그 독특함은 어릴 떄부터 이렇게 정체성에 혼란을 느껴야 헀떤 고흐가 이를 극복하려는 과정에서 유독 자기만의 것에 집착한 결과일 것이다.
 누군가를 아버지와 동일시하는 경향. 고갱의 강한 성격은 고흐로 하여금 그를 아버지와 동일시하게 했다.


- 진정한 의미의 풍경화는 그 자체로 의미가 있고, 그 자체로 완결되어 있으며, 일종의 초상적 성격(자연에도 표정이 있다.)을 지닌 풍경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진정한 의미의 풍경은 의식적인 개인을 필요로 한다.

- 유디트 : 성서에 나오는 인물, 이스라엘을 구한 영웅. 미술사에서 그녀는 종종 성모 마리아의 전신으로 여겨지기도 했고, 가끔은 어떤 정치적 의미를 상징하는 인물로 묘사되기도 했다.

- 임신부 : 창조하는 존재로서의 자아 표현

- 구속사의 알레고리
  - 기독교 사관은 본질적으로 직선 사관이다. 즉 아담의 창조에서 시작하여 계씨록에 예언된 종말에 이르는 일직선의 흐름이다.
  - 고대 신화는 역사가 동그라미를 그리며 탄생, 소멸, 재탄생의 원환 운동을 한다. 

- 바니타스 : 두개골, 모래시계, 촛불, 비눗방울 등을 통해 삶의 무상함을 표현한 그림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