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승달은 야하다

 미국 사람들은 우주선을 타고 달에까지 직접 날아가 지표에 성조기를 꽂았고 한국 사람들은 툇마루에 앉아 막걸리를 마시면서 지표에 우아한 계수나무를 심었다. 달이 서양 사람들에게 과학적 상상력을 자극하였다면 동양 사람들에게는 문학적 상상력을 자극한 것이다. 
 서양 사람들은 보름달을 보면 늑대인간이나 정신착란을 연상하지만 동양 사람들은 보름달을 보면 월하미인이나 음유시인을 연상하는 것도 그 연장선이 아닌가 싶다.

 그런데 초승달을 바라보고 있으면 무언가 에로틱한 느낌이 든다. 신윤복 때문이다.


월하정인

달빛 어두운 삼경에 두 사람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알겠지
  


月沈沈夜三更                             달빛 어두운 삼경
兩人事                                       두사람의 마음은
兩人知                                      두사람만이 알겠지

남자는 여자를 쳐다보고있고, 여자는 그 눈길을 부끄러운 듯 애써 외면하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발과 남자의 발은 같은 곳을 바라보고있다. 마음은 통한 것일까. 두 사람의 마음은 두 사람만이 알겠지만, 달은 모든 것을 알고있다. 그림의 중앙에서 비껴나있는 두 사람은 아무래도 달도 모르는 그들만의 공간을 향해 떠날 듯 하다.

이태백은 강물 속에 빠진 달이 너무나도 아름다워보여서 그것을 건지러 들어갔다가 익사했다고 한다. 그런데 신윤복은 달이 뜨면 또다른 사랑을 찾아 나선다.



월하밀회

한 남자와 두 여자. 현대판 사랑과 전쟁인 것인가

 보름달은 신윤복에게 너무나 밝았기 때문일까. 보름달이 슬픈 이유가 곧 이지러짐을 알기 때문이라면 밀회의 장면을 보는 여자의 마음 역시 너무나 아플 것이다. '보름달은 왜그렇게 밝아서 나에게 이런 장면을 보여 주는 것인가.' 보름달을 책망할지도 모른다.


 '적어도 인간이라면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달빛에 심신을 흠뻑 적셔주어야 감성이 녹슬지 않는다.' - '장외인간' 중

 곧 정월대보름이다. 밝은 달과 이를 즐기려는 많은 사람들이 있겠지... 하지만 때로는 초승달의 에로티시즘에 젖어 일탈을 꿈꾸어 보는 건 어떨까.





* '월하정인'에 나오는 달은 사실 초승달이 아니라 부분월식에 의해 가려진 달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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