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는 없는 또 하나의 잠언. 팡세(Pansee)

 해병대에 입대하여 이병때 읽고, 이병때 다 읽은 책. 해병대 이병 시절.. 그 힘든 기간 동안에 읽은 책이라 그런지  느낀 것이 많다. 맞아가며, 욕을 먹으며 읽은 책이라 지금도 소중히 내 서재에 꽂혀 있는 책이다. 성경에는 없는 또 하나의 잠언.. 팡세... 




제 1부. 신 없는 인간의 비참


A. 머릿말
 - 질문한다는 것 자체가 판단을 왜곡한다. 질문하는 것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생각 무언가를 덧붙이기 때문이다.
  =>판단의 취약성
 - 이성은 감정에 굴복한다. 감정과 환상을 사람들은 혼동한다. 그러나 이 두 가지를 이성을 통해 구분지을 수는 없다.
 - 잘못을 깨우쳐주려고 할 떄에는 '그가 어떤 방향에서 사물을 보는가'를 확인해야 한다. 왜냐하면 그의 방향에서는 대체로 옭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단지 모든 것을 보지 못한 것이다.
 - 사람은 타인의 이유보다 자신이 발견한 이유로 더 잘 납득한다.
 - 자동기계(습관) <-> 정신(증명) : 이성은 모든것을 간직하지 않는다. 감정에 자신의 모든 믿음을 집어넣어 두여야 한다.
  => 습관은 자동 기계를 기울게 하고, 자동 기계는 무의식적으로 정신을 이끌어낸다.
 - 처음에는 무슨 이유인지도 모르고 어떤 일에 기뻐하기도, 화내기도 한다. 그리고 이유는 나중에서야 발견한다.


B. 서론
 - 하나님이 명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다고 말하지 말라. 원래 기독교의 신은 '숨어있는 하나님'이다. 곁에 안 나타난다고 기독교를 비판하는 것은 오히려 기독교를 강화시키는 셈이다.
 - 영혼의 불멸은 매우 중대한 사항이다. 우리의 모든 행동과 사고는 영원한 행복이 가능한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 '영혼의 불멸'에 무관심한 사람들 : 현세의 삶에는 영원한 만족이 없고 언젠간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내세의 희망이 필요한데 이에 무관심하다면 곧 그 사람은 행복이 없다는 말과도 같다.
- 인간은 극히 사소한 일에 두려워하지만 극히 중대한 일에 무감각하다.
 => 모든 일에 무감각하지도 않다..! 이것은 마법이다. 영원에 대해 어쩜 그리도 무관심할 수 있을까.
- 현재를 지나치게 확대시키고 영원을 너무나도 축소시킨다.
 => 영원을 허무로 만들고, 허무를 영원으로 만든다.
- 철학자의 오만 : 비참을 모르고 신을 알다
  무신론자의 절망 : 비참을 알고 있으나 신을 모른다
 =>신과 비참을 동시에 알 때 예수를 알 수 있다.
-상실했음을 깨달을 만큼만 보다
 =>상실한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보아야 한다. 보았을 때 이미 상실했음을 안다.


제 1편. 순서(order), 질서, 구성
 - 성경은 예수가 직접 쓴 것이 아니다. 그런데 코란은 마호메트가 직접... 증인의 자격이 있고 없음의 차이
 - 신이 인간의 마음 속에 넣어주는 것은 믿음이고 증거는 흔히 수단이다.
 - 종교에 대한
  => 존경 : 인간을 올바르게 이해하였으므로
  => 사랑 : 참된 행복을 약속하므로
 - 기독교가 진실되며 지금까지 내가 잘못 생각하였다는 두려움이, 기독교를 믿음으로써 내가 잘못 생각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두려움보다 훨씬 더 크다.


제 2편. 헛됨(vanite), 공허, 허영
 - 따로 있을 때는 웃기지 않은 닮은 두 얼굴이 함께 있으면 서로 닮은 것 때문에 웃긴다.
 - 인간의 어리석음 인정은 어리석음을 존경해서가 아닌, 어리석음을 준 신을 존경하기 때문이다.
 - 진리와 도덕의 중심에 관한 비유 : 작품을 쓱 난 직후에 그것을 들여다보면 여전히 작품에 대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있다. 너무 오랜 후가 되면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다.
 - 외적 사물의 지식은 도덕의 무지를 위로하지 못하나 도덕의 무지는 외적 학문의 무지를 위로한다.
 - 왕의 얼굴에 위엄이 서려있다고 느끼는 이유는 습관 때문이다. 언제나 그의 곁에는 거느리는 많은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 위대한 일은 민중의 우매함을 기반으로 삼고 있는 데, 이는 놀랍도록 견고하다. 민중이 모자라다는 것보다 확실한 것은 없기 때문이다. 이성에 기반을 둔 것은 매우 잘못 세워진 것이다.
 - 우리는 배를 지휘할 사람으로 배를 탄 사람 중에서 가장 훌륭한 가문의 사람을 택하지는 않는다.
 - 존경의 의미는 '부자유를 참아라'이다.
 - 상상력은 이성을 믿게 하고 의심하게도 하고 부정하게도 한다.
  => 상상은 어리석은 자를 영리하게 만들지는 못해도 행복하게는 만든다.
 - 상상력은 영광으로 감싸고 이성은 치욕으로 덮는다.
 - 대중은 단지 상상적인 지식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자신들이 상대하는 상상력에 작용할 헛된 장치들을 이용할 필요가 있다.
 - 클레오파트라의 코, 만약 좀 더 낮았더라면 지상의 모든 표면은 달라졌을 것이다.
 - 우리는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를 바라고 있다. 그리고 항상 행복하려고 준비하고 있으니 결코 행복할 수 없다는 것은 불가피하다.
  => 현재와 과거는 우리의 수단이고 단지 미래만이 우리의 목적인 셈이다.
 - 마구간에서 가장 둔하고 흉한 모양의 말이라고 해서 다른 말에게 귀리를 양보하지는 않는다. 말의 특성은 그 자체로써 충족된다. (=인간의 특성)
 - 진실을 그 자체로써 파괴할 수 없기 때문에 그는 진실에 대한 자신의 인식과 타인의 인식 가운데서 가능한 한 이것을 파괴한다.
 - 결함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 그것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은 더 큰 불행이다. 왜냐하면 의식적인 환각이라는 불행을 더하기 때문이다.
 - 인간 사이의 결합이란 오직 이 상호 기만 위에 서 있을 뿐이다.


제 3편. 비참
 - 압제는 자신의 범주를 넘어 보편적으로 지배하려는 욕망으로 성립한다. 강한 것, 아름다운 것, 재능 있는 정신 등은 각기 다른 범주를 지니고 있으며 힘에는 두려움의 의무를, 지식에는 신뢰의 의무를 지닐 필요가 있다.
  => 즉 압제는 어떤 길을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것을 다른 길을 통해 얻으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그는 강하지 않다. 그러므로 나는 신뢰하지 않겠다 등.
 - 법의 본질은 습관이다. 습관은 받아들여졌다는 그 하나의 이유만으로 전적으로 공정한 것이 된다. 습관을 그 기원으로 되돌려놓는 사람은 그것을 파괴하고 말 것이다.
 => 법의 근거를 살피려고 하는 사람은 그것이 너무나도 미약하고 하찮은 것임을 발견할 것이다. 법은 일찍이 이유 없이 도입되었지만 잊 정당한 것이 되었다.
 - 내 생애의 짧은 기간이 그 전과 후의 영원 속에 흡수되다.
 - 눈앞에 보이는 작은 공간이 내가 모르고 또 나를 모르는 무한대의 공간 속에 흡수되다.
 - 우리의 마음을 가장 크게 사로잡는 것들, 그것은 우리의 상상력이 산더미같이 확대시킨 무(無)이다.


제 4편. 권태와 인간의 본질적 특성
 - 우리의 본성은 움직임에 있다. 전적인 휴식은 죽음이다.
 - 인간은 원래 omne animal이다.
 - 인간은 그 누구를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특성만을 사랑한다.
  => 누군가를 그 사람의 미모 때문에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를 사랑하는 것일까? 아니다. 만약 천연두가 그를 죽이지는 않고 그 사람의 아름다움만을 죽인다면 그를 사랑하지 않을 테니까.
 => 특성들에 의하지 않고 한 인간 영혼의 실체를 파악할 수 없다.


제 5편. 현상의 이유
 - 정의에 복종하는 것을 힘으로 강요할 수 없었으므로 힘에 복종하는 것을 정의로운 것이 되게 하였다.
  => 힘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분명한 특성이기 때문에 마음먹은 대로 다루어지지 않는데 반해, 정의는 마음대로 처분할 수 있는 정신적 특성이므로 사람들은 정의를 힘의 수중에 넘겼다.
 - 사람이 빛을 갖는 데 따라 의견들은 정에서 반으로 계속 이어져 나간다.
 ex) 민중은 훌륭한 가문의 사람들을 존경한다. 반(半)식자들은 이들을 경멸하고 가문은 개인의 우월이 아니라 우연이 베푼 우월이라고 말한다. 식자들은 이들을 존경한다. 민중과 같은 생각에서가 아니라 배후의 숨은 생각에서이다.
 - 배후의 숨은 생각을 가져야 하고, 설사 민중처럼 말은 하더라도 이 생각으로 만사를 판단해야 한다.
 - 진리는 정녕 그들의 의견 안에 있지, 그들이 생각하는 곳에 있지 않다.
 ex) 귀족들을 존경해야 한다는 것은 옳다. 그러나 출생이 실제적으로 우월하다는 등등의 이유에서가 아니다.
 - 몸치장을 하는 것은 그렇게 헛된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자기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 종들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는 더 강하다. 몸 치장을 하는 것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이다.
 - 인간의 결함은 사람들이 수많은 미를 만들어내는 원인이다.
  => 비파를 잘 연주할 줄 모르는 것은 단지 우리의 결함 때문에 불행이 된다.


제 6편. 위대
 - 사욕에서 하나의 놀라운 규범을 끌어낼 수 있었고 또 자비의 한 모형을 만들어낸 점에서 인간은 사욕 안에서 위대하다.
 - 우리는 이성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심정에 의해서도 진리를 안다.
  => 우리가 기본 원리를 아는 것은 이 심정에 의한 방법에서이다.
  => 이성이 의지해야 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본능의 인식이며, 이성은 자신의 모든 추론을 이 인식 위에 세우고 있는 것이다.
 - 공간으로써 우주는 한 점처럼 나를 감싸고 삼켜버린다. 사유로써 나는 우주를 감싼다.
 - 신을 느끼는 것은 심정이지 이성이 아니다.
 - 사유의 순서는 자신으로부터, 그리고 자신의 창조자와 그의 목적으로부터 시작된다.
  => 그런데 사람들은 무엇을.. 단지 노래부르는 것들에만 관심이 있다. 왕이 되는 것이 무엇이고 인간이 무엇인지는 생각하지도 않으면서
 - 사람이 자신의 위대함을 보여주는 것은 어떤 극단에 도달함으로써가 아니라 동시에 두 극단에 닿을 때 그리고 양자의 중간을 충분히 채울 때이다.
  => 하나만 극단에 닿는 것은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 내려가기만 하는 것과 같다.
   ex) 용맹과 인자함, 그 두가지를 지녔을 때의 위대함


제 7편. 상반된 것들 - 인간에게 그가 얼마나 짐승과 동등한지 보여주기만 하는 것은 안되며, 그의 저속을 밝히지 않고 그의 위대만을 보여주는 것도 위험하다.
  => 그 중 어느 것도 알려주지 않는 것은 더 위험하며 둘을 다 보여주는 것이 유익하다.
 - 인간은 자기가 비참하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그는 비참하다. 실제로 그렇기 때문에. 그러나 그는 진정 위대하다. 자신이 비참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 습관은 제 2의 본성이다. 그런데 본성도 제 1의 습관에 불과한 것이라면...
 - 자연은 회의론자들을 꺾고 이성은 독단론자들을 꺾는다.
 - 우리가 완전한 상태에 있었으나 불행히도 그 상태에서 전락했다는 것은 명백하다.
  => 인간이 타락하지 않았다면 순결함 속에서 확실히 진리와 행복을 누릴 것이고, 인간이 애초에 타락하기만 했다면 진리와 행복에 대한 아무 관념도 없었을 것이다.
  => 그러나 우리는 행복의 관념을 가지고 있으되 이에 도달할 수 없고, 진리의 영상을 느끼되 오직 허위만을 소유하고 있다. 절대로 모르는 것도, 또 확실히 아는 것도 불가능하다.
 - 우리가 진정으로 우리를 알 수 있는 것은 이성의 오만한 움직임에 의해서가 아니라 오히려 이성의 순박한 복종에 의해서이다.
  => 불변하는 신앙의 진리 : 은총이 있으면 신과 같이, 없으면 짐승과 같이 행동하게 되는 인간
 - 겸허한 담론도 뽐내는 사람들에게는 오만의 이유가 되고, 겸허한 사람들에게는 겸허의 이유가 된다. 그런데 겸허에 대해 겸허하게 말하는 사람은 드물다.
 - 인간은 천사도 아니고 짐승도 아니다. 불행하게도 천사가 되려는 자가 짐승이 된다.
 - 인생이란 약간 덜 변덕스러운 꿈이다.


제 8편. 위락
 - 사람은 죽음과 비참과 무지를 치유할 수 없으므로 자기의 행복을 위해 이것들을 생각하지 않기로 작정했다.
 - 인간의 모든 불행은 단 한가지 사실, 즉 그가 방안에 조용히 머물러 있을 줄 모른다는 사실에서 유래한다.
  => 우리들의 무력하고 죽을 수 밖에 없는 삶의 조건, 그리고 그것을 깊게 생각할 때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위로할 수 없을 만큼 비참한 우리의 조건이 자연적 불행으로 성립되어 있는 것이다.
 => 인간의 유일한 행복은 자신의 조건을 생각하는 것에서 마음을 돌아서게 하는 데 있다.
 => 인간은 진정으로 안식을 추구한다고 믿고 있지만 실은 소란만을 찾고 있는 것이다.
 - 죽음은, 위험 없는 죽음을 생각할 때보다 죽음ㅇ르 생각하지 않을 때 더 견디기 쉽다.


제 9편. 철학자들
 - 세가지의 정욕(concupiscence) : 육의 정욕, 눈의 정욕, 자랑(오만)
 - 순전한 위대의 감정, 혹은 비속의 감정은 인간의 상태가 아니다.
  =>참회에서 생겨나는 비속의 감정 ---> 은총에서 생겨나는 위대의 감정으로 옮기어 간다..
 - 위대함은 중간에서 벗어나는 데 있기는 커녕 거기서 벗어나지 않는 데 있다.
 - 우리는 진리도 선도 부분적으로만, 그리고 악과 허위가 섞인 것으로만 가지고 있다.
 ex) 순결을 영원히 지킨다면 세상이 끝날 것이고, 살인이 없다면 끔찍한 혼란이 악인에게로부터 올 것이다.


제 10편. 최고선
- 계속적이고 한결같고 오랜 경험은 우리의 노력으로는 행복에 도달하지 못하는 우리의 무능력을 우리에게 충분히 납득시켰어야 할 것이다.
  => 그러나 실제에는 별로 우리를 가르쳐주지 못한다. 그 사이에 미묘한 차이가 없을 만큼 완전히 일치하는 경험은 없으며 그래서 우리는 이번만은 지난번처럼 기대에 어긋나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


제 11편. 포르루아얄에서
 - 인간은 자기가 스스로의 중심이 되고 신의 도움으로부터 독립하기를 원하였다
 - 신은 인간에게 그를 사랑하고 그를 아는 것 외에 무엇을 요구하는가.
  <=(의문) 신이 왜 자신을 알아주기를 바란다고 생각하는가???? 적어도 완전체라면...
 - 오직 보기만을 바라는 자들에게는 충분한 빛이 있고, 이와 반대되는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충분한 어둠이 있다.
 - 우리는 태어나면서부터 불의하다. 모든 것이 자기를 향하고 있으니까. 이것은 모든 질서에 어긋나며 우리는 마땅히 전체를 향해야 한다.
 - 쇠사슬의 비유 : 인간 조건의 모습,, 인간은 쇠사슬에 묶인 채 주변 동료가 죽어가는 것을 바라보아야 한다.
 - 신이 자기를 시험하는 자들에게는 스스로를 숨기고 그를 찾는 자들에게는 스스로를 나타낸다.


제 12편. 서두 - 우리는 절벽이 보이지 않게 무엇인가로 앞을 가린 다음 그곳을 향해 태연하게 달려간다.
 - 신의 증명을 증가함으로써가 아니라 당신의 정욕을 억제함으로써 깨닫도록 힘써야 한다.
 - 무한하고 불가분의 것 : 무한한 속도로 사방의 움직이는 점
  =>이것은 모든 지점에서 하나이고 또 각 지점에서 전체이기 때문이다.
 - 아무 것도 알아야 할 것이 남아 있지 않다고 결론짓지 말고, 반대로 알아야 할 것이 무한히 있다고 결론지어야 한다.


제 13편. 이성의 복종과 이용
 - 이성의 복종과 이용, 참된 기독교는 이것으로 성립된다.
 - 반론이 허위의 표시가 되지 않고 또 무반론이 진리의 표시가 되지도 않는다.
 - 지금은 유대인들과 맞서기 위해 더이상 기적이 필요하지 않다. 성취된 예언은 하나의 영속적인 기적이기 때문이다.
 - 이성의 최후의 한걸음은 자기를 초월하는 무한한 사물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다.
  => 자연적 사물들도 이성을 초월한다면 하물며 초자연적 사물에 대해서는 뭐라 말할 것인가.
 - 이성이란 모든 것에 대해 휘어 구부러진다.


제 14편. 신을 증명하는 이 방법의 우월성 - 자기의 비참을 모르고 신을 안 사람들은 신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였다. 신을 모르고 자신의 비참을 아는 것은 절망을 낳는다.


제 15편. 인간의 인식에서 신으로의 이행 - 마치 우리의 삶이, 잠든 사이에 삭막하고 끔찍한 섬으로 실려가 눈을 떠보니 어디에 자기가 있는지도 모르고 또 거기서 빠져나올 방도도 없는 사람같다.
 - 인간이란 무한에 비하면 허무, 허무에 비하면 전체, 허무와 전체 사이에 걸려있는 중간자이다.
  =>항상 정처없이 떠다니며 한 끝에서 또 한끝으로 떠밀려 광막한 중간을 표류한다.
 - 우리의 이성은 변화무쌍한 외관에 끊임없이 기만당하고, 아무것도 유한을 두 무한 사이에 고정시키지 못한다.
 - 이 세상의 부분들은 매우 긴밀하게 상호 관련되고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부분들 혹은 전체를 모르고 한 부분을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연기설)
  => 전체를 몰면 부분을 알 수 없을 뿐만 아니라 부분을 개별적으로 알지 못하면 전체를 아는 것도 불가능하다.
 - 우리는 순수한 사물들의 관념을 받아들이는 대신 우리가 지닌 성질로써 그것들을 채색하고 또 우리가 보는 모든 단일한 사물들에 우리의 복합적인 존재를 새겨넣는다.
 - 정신이 어떻게 육체와 결합되었는지 인간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이것이 곧 인간이다.
 - 믿는 데는 세 가지 방법이 있다. 즉 이성, 습관, 그리고 신의 감화
 - 당신이 위로를 기대해야 할 것은 당신에게서가 아니다. 반대로 당신에게서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음으로써 위로를 기대해야 한다.
 - 인간은 자연에서 가장 연약한 한 줄기 갈대일 뿐이다. 그러나 그는 생각하는 갈대이다. 그를 박살내기 위해 전 우주가 무장할 필요가 없다. 한번 뿜은 증기, 한 방울의 물이면 그를 죽이기에 충분하다. 그러나 우주가 그를 박살낸다 해도 인간은 그를 죽이는 것보다 더 고귀할 것이다. 인간은 자기가 죽는다는 것을, 그리고 우주가 자기보다 우월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우주는 아무 것도 모른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존엄성은 사유로 이루어져 있다. 우리가 스스로를 높여야 하는 것은 여기서부터이지, 우리가 채울 수 없는 공간과 시간에서가 아니다. 그러니 올바르게 사유하도록 힘쓰자. 이것이 곧 도덕의 원리이다.


제 16편. 다른 종교들의 허위성 - 한 민족에 의해 받아들여진 책 혹은 한 민족을 만들어내는 책의 차이에 대하여...


제 17편. 사랑할 만한 종교
 - 복음서의 문체,, 예수 그리스도를 처형한 자들과 적들에 대해 전혀 비난하지 ㅇ낳음 점을 비추어볼 때 이것이야말로 냉정하게 일이 이루어졌다는 증거이다.


제 18편. 종교의 기반과 반론에 대한 반박
 - 서로 배타적인 듯하면서도 놀라운 차원에서 공존하는 수많은 진리들과 신앙과 도덕이 있다.
  => 이단의 원천은 상반된 두 진리 사이의 관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한 진리의 용인은 다른 진리의 배제를 포함한다고 믿음으로써, 하나를 고집하고 하나를 배척하는 데에 있다.
  ex) 예수는 신이며 인간이다.


제 19편. 표징적 율법 - 우리는 서로 어긋나는 우리의 모든 것을 일치시킴으로써 비로소 하나의 훌륭한 모습을 그릴 수 있다.
  ex) 한 저자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모든 상반된 구절들을 일치시킬 필요가 있다.
 - 예언자들이 영원한 왕이 올 때까지 왕권은 결코 유대를 떠나지 않으리라고 예언한 이유
  => 현세의 왕국이 종말을 고하리라는 것을 그들이 잘 알고 있었음을 나타내기 위해
 - '구약'은 부호이며 표징일 뿐이다.
 - VERITAS LIBERABIT VOS :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 8장 30절-33절)


제 20편. 랍비의 교리
 - 원죄 = 악, 포피, 불결, 원수, 치욕, 돌 같은 마음, 북풍 등
  ex) 잠언 25장 21절. <만익 네 원수가 굶주리면 먹을 것을 주라>
   =>악의 싹이 굶주리면 지혜의 빵을 주라


제 21편. 영속성
 - 유대인 : 전적으로 형제들로 구성되었음 -> 오랫동안 존속해 왔다.
 - 기독교는 단지 신의 사랑으로 이루어졌으며 신은 다른 모든 것을 물리치셨다.
  ex) 유대인의 종교 또한 할례, 제물, 언약의 궤 등으로 성립된 것이 아니다.
 - 만약 유대인들이 모두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믿음을 갖게 되었다면 우리는 의심스러운 증인만을 갖게 될 것이다.
  => 믿지 않음으로써 예수에 대한 믿음이 강화되었다.
 - 침몰하지 않는다는 보장이 있을 때 폭풍이 휘몰아치는 배 안에 있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교회를 괴롭히는 박해는 이런 종류의 것이다.


제 22편. 모세의 증거
 - 일상의 담화를 대부분 차지하는 연구, 학문, 예술 따위가 없었기에,, 이 시대 사람들은 계보의 보존에 각별한 주의를 기울였다.
 - 진실은 단지 사람들이 바뀌는 데 따라 변질된다. 일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은 세대의 많은 뒤바뀜이다.


제 23편.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 육체에서 정신에 이르는 무한의 거리는 정신에서 사랑에 이르는 무한히 더 무한한 거리를 표징한다
  => 이것들은 각기 종류가 다른 세 질서이다.
  ex) 모든 물체를 합친다 해도 사람은 그것으로 작은 생각 한토막도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모든 물체들과 정신들에게서 사랑은 참된 사랑의 움직임 하나도 끌어내지 못할 것이다. 다른 질서이기에...


제 24편. 예언
 - 위대한 목신(牧神)은 죽었다.


제 25편. 특별한 표징들

제 26편. 기독교 도덕
 - 법사와 수도사
  =>공통점 : 복종하고 의존하고 고통스러운 단련을 한다.
  =>차이점 : 병사는 늘 윗사람이 되기를 희망하지만 그렇게 되지 못한다.
                 수도사는 오직 예쏙되기만을 서약한다
             -> 병사는 항상 가지고 있고 수도사는 전혀 가지고 있지 않은 희망에 있어서 서로 다르다.
 - 의식(儀式)에 희망을 두는 것은 미신이다. 그러나 의식에 복종하지 않으려는 것은 오만이다.
 - 지체들이 행복하기 위해서는 각기 하나의 의지를 가져야 하고, 이 의지를 몸에 일치시켜야 한다. 마치 손이 하나의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그 자신이 의지하고 있는 몸을 위해서 자신을 사랑해야 한다.
  =>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지체이기 때문이며, 예수 그리스도는 몸이고 우리는 이 몸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 만약 발과 손이 개별적인 의지를 가지고 있다면 몸 전체를 다스리는 기본 의지에 이것을 복종시키지 않는 한 그것들은 본래의 질서 안에 있지 않게 된다. 이 질서를 벗어날 때 그것들은 무질서와 불행 속에 빠진다. 그러나 몸 전체의 행복만을 추구할 때 그것들은 자신의 행복을 얻는다.
 - 두 종류의 사람. 하나는 자기를 죄인으로 믿는 의인들, 다른 하나는 자기를 의인으로 믿는 죄인들.
 - 악인들이 존재하는 것을 막기 위해 죽여야 하는가. 이것은 한쪽 대신 양쪽을 악인으로 만든다.
  =>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한다.
 - 위대한 사람이나 평범한 사람이나 같은 대지에 발 딛고 서 있다.
 - 신이 내리는 자비의 본질은 우리를 선한 행실로 인도함으로써 나태를 무찌르는 데 있다. 이렇듯, 신의 자비가 방종을 허락하는 것은 당치도 않으며 도리어 방종과 결연히 싸우는 것이 그것의 특징이다.
 - 신에게서 무엇인가를 받기 위해서는 외면이 내면과 합쳐져야 한다.
  => 외면에서 구원을 기대하는 것은 미신이다.
  => 외면을 내면과 결합시킬 하지 않는 것은 교만이다.
 - 우리의 정념이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하게 할 때 우리는 의무를 망각한다. 의무를 기억하기 위해서는 무엇인가 싫은 일을 할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때 해야 할 다른 일이 있다는 구실을 갖게 되고 이런 방법으로 자기의 의무를 기억하는 것이다.
 - 사람은 매일 먹고 잠자는 일에 싫증을 느끼지 않는다. 굶주림과 잠이 되살아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싫증날 것이다.


제 27편. 결론
 - 진정한 회심은 인간이 수없이 진노하게 했던, 그리고 인간을 어느 때나 정당하게 멸할 수 있는 보편적 존재 앞에 자기를 무(無)로 만드는 데 있으며, 그 존재 없이는 인간이 아무것도 할 수 없고 또 그에게서 그의 버림받음 외에 아무것도 받을 자격이 없음을 인정하는 데 있다.
 - 신이 숨어 있을 때에도 그의 자비가 우리를 유익하게 가르칠 만큼 크다면 하물며 신이 스스로를 나타내실 때 그 어떤 빛을 기대하지 않을 수 있는가
 - 신을 찾고 따르기를 원하면 되돌아갈 수 있기에 충분한 빛을, 또 신을 찾거나 따르기를 거부하면 그들을 벌하기에 충분한 빛을 주신다.
 - 우리 종교의 증거, 예언 나아가서는 기적까지도 절대적으로 설득력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들을 믿는 것을 불합리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만큼의 설득력은 있다.
  => 이러한 확실성은 그 반대되는 것의 확실성을 넘어서는 혹은 적어도 같은 정도의 것이다.
  => 즉, 확실한 것을 따르는 사람들의 경우 이것을 따르게 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은총이며 또 이것을 피하는 자들의 경우 이것을 피하게 하는 것은 이성이 아니라 정욕이라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이다.



제 2부. 신 있는 인간의 복됨
제 1편. 개인적 수기 (memorial) - 예수는 유다의 마음 속에서 적의를 보지 않고 오히려 그가 사랑하는 하나님의 명령을 본다.
 - 아직 있지도 않은 일을 잘할 수 있을 까 미리 궁리하는 것은 너 자신을 시험하기보다 오히려 나를 시험하는 것이다. 그 때가 되면 네 안에서 내가 이룰 것이다.
 - 신앙에 들어가는 데에는 고통이 따른다. 이는 본래적인 악이 초자연적 은총에 저항하는 데 따라 고통을 느낄 뿐이다.
 - 혼자일 때나 남이 보는 앞에서나 나는 모든 행동에 있어서 신의 시선을 간직한다.
 - 단식하고 자기 만족에 빠지는 것보다 단식하지 않고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더 좋다.


제 2편. '진공론'을 위한 수기 -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는 주장 : 정념은 이것을 느끼는, 적어도 감각을 지닌 영혼을 존재로 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혐오의 대상이 진공이라는 말인가! 말도 안된다.


제 3편. '은총론'을 위한 수기 - 율법은 자기가 주지 않은 것을 의무로 정하였다. 은총은 자기가 의무 지우는 것을 준다.


제 4편. '프로뱅시알'을 위한 수기 - 법의(法衣)가 교리(敎理)를 만든다.
 - 다양성 없는 통일은 외부의 사람들에게 무익하고, 통일 없는 다양성은 우리에게 파멸을 가져온다.
  => 전자는 외부에 해롭고, 후자는 내부에 해롭다.
 - 개연적인 의견, 개연성(opinion probable) : 행위에 대해, 동기와 상황에 대한 갖가지 고려, 즉 개연적인 의견에 따라 유연하게 판정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간악한 이유들도 개연적이라면 어떤 것이나 개연적이 아닌 것이 없다.
  => 개연성. 수많은 구실로 죄를 피하기두 쉽고 속죄하기도 쉽다.
 - 죄의 정도 : 비방하는 것< 그 악한 것을 보지 않는 것 < 이것을 죄로 고백하는 대신 오히려 변호하는 것
 - 교부(敎父)의 생각을 본받아 자신의 생각을 키우는 대신 자신의 상상에 일치시키기 위해 교부의 글을 읽는 것.
 - 사람은 양심에 따라 악을 행할 때 가장 마음껏 그리고 가장 즐거이 행한다.
 - 그가 가지고 있다고 믿는 능력과 그의 어리석음 사이에는 너무나도 큰 불균형이 있어서 어떻게 그처럼 자신을 착각할 수 있는지 믿기지 않는다.
 - 지식과 열정. 지식 없는 열성을 지닌, 열성 없는 지식을 지닌, 지식도 열성도 없는, 열성과 지식을 겸유한 사람들이. 처음 세 부류의 사람들은 그를 규탄한다. 최후의 열성과 지식을 겸유한 사람들은 그들을 용서하고 교회에서 파문당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구한다.
 - 평화가 정당한 떄가 있고, 평화가 부당한 때가 있다.
  =>평화의 때가 있고 전쟁의 때가 있다.



제 5편. '페리에 양의 기적에 관하여'를 위한 수기 - 기적 : 어떤 결과든 사용된 수단의 자연적 힘을 초월할 때
  =>악마의 재주로 마귀를 쫓을 경우 기적이 아니다. 자연적 힘을 초월하지 않기 때문이다.
  =>예수의 행하심. 곧 기적


제 6편. '기하학 또는 논리학 개론'의 서문을 위한 수기 - 두 종류의 정신
  => 소수의 원리로부터 정확히 결론 = 원리의 결과를 생생하고 깊이 있게 꿰뚫어 본다.
    ->올바른 정신. 정신과 힘과 올바름
  => 많은 원리로 구성된 사물에서 정확히 결론 = 수많은 원리들을 혼동하지 않고 파악한다.
    -> 기하학의 정신. 정신의 폭
 - 기하학의 정신(정의(定義), 원리) <-> 섬세의 정신(직관, 느낌). 그리고 그릇된 정신
 - 정신을 다소 풀어주는 것은 필요하다. 그러나 이것은 가장 큰 방종으로서의 길도 연다. 그러니 그 한계를 정해야 한다.
  ex)불평등 인정. 폭정이 열리다.
         

제 7편. '귀족의 신분에 관한 세 담론'을 위한 수기 - 권력자들의 즐거움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수 있는 데 있다. 권력의 특성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데 있다.


제 8편. 잡록 - 그는 10년 전에 사랑했던 사람을 지금은 사랑하지 않는다. 그녀는 지금 완전히 달라졌다. 그녀가 그때 그대로의 모습이라면 아마도 그는 계속 사랑할 텐데 말이다.
 - 인간의 커다란 병폐는 자신이 알 수 없는 것들에 대한 불안한 호기심을 갖는 것이다.
 - 즐거움과 아름다움. 우리의 본성과 사물 사이에 존재하는 어떤 관련성으로 성립된다.
 - 다른 사람들처럼 말은 해야 하지만 귿르처럼 생각해서는 안 된다.
 - 말들을 다르게 배열하면 다른 뜻을 나타내고, 뜻을 다르게 배열하면 다른 결과를 불러일으킨다.
 - 같은 의미도 이것을 설명하는 말에 따라 달라진다. 의미는 말에 존엄성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말로부터 존엄성을 받는다.
 - 자연은 다양화시키고 모방한다. 인공은 모방하고 다양화시킨다.
 - 좋은 정신 속에 뿌려진 원리는 열매를 맺는다.
 - 웅변. 즐거움과 현실성이 다 있어야 한다. 그러나 그 즐거움은 진실에서 취해진 것이어야 한다.
 - 위대함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것에서 떠나 있을 필요가 있다. 지속되는 것은 그 무엇이든 불쾌감을 준다.
 - 한 재능이 두드러지게 나타나서 그것으로만 이름이 불리어지는 것
   =>나를 하나의 명제로 취급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 교양인. 이 보편적인 성격만이 나를 만족시킨다
 - 지성과 감정은 대화에 의해 길러진다. 또 지성과 감정은 대화에 의해 망가진다
  => 이것들을 기르고 망가뜨리지 않기 위해서는 대화를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선순환 혹은 악순환이 반복될 수 있다. 신중해야 한다.


작품 해설 -'폐위된 왕' ..인간
 - 정념의 속박은 너무나도 현실적이고 강력하다.
 - 명료성의 결여 => 기독교의 본질 => 성서학의 핵심. <숨은 신>의 원리
 - 인간(자연)  <-> 은총(초자연) : 수직적 대립 (이원론)
 - 파스칼 : 교회 밖의 호교론자
    => 신의 메시지를 전함. 우리의 언어, 인간의 언어로 번역된 우정에 넘치는 메시지



이 책 다음으로는 '만들어진 신'을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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