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균관대의 이모저모

 * 명륜당 (보물 141호) : 성균관 문묘 뒤에 건립되 있는 강당으로서, 조선조 유생들이 유교경전을 중심으로 강학을 하던 곳이다. 학생들의 시독과 소과, 대과를 치르는 과거 장소로도 쓰였다.
 -> 군자의 도리와 도덕을 배우고, 공자와 맹자의 위패가 모셔진 이곳, 성균관.

행사를 위해 명륜당에 공자의 초상을 모시고 있다.
천원권을 펴서 이황 선배님 뒷편에 있는 건물을 보자.. 명륜당의 모습이 보인다!

공기 2562년 추기석전을 기념하는 현수막. 성균관의 전통을 계승한 성균관대에 걸려있다.

 * 비천당 오른쪽의 두 번째 나무 아래
   (*비천당 : 과거장소로 쓰였던 곳)
 -> 앞의 첫번째 나무는 앙상하여 그늘이 거의 없었다.
 -> 왼쪽의 나무 아래는 오전에는 햇볕을 그대로 받고 오후가 되어서야 그늘이 진다.
 ∴ 비천당 오른쪽 두 번째 나무 아래가 과거 보기에 가장 좋은 장소였다.

비천당. 앞뜰은 아직도 넓다. 요즘은 예절교육하는 장소로 이용되고 있다.


* 성균관에 나타나는 귀신 이야기 :
 방마다 온돌이 있찌만, 조선 초에는 그런게 없었다. 그러니 겨울에는 얼마나 추웠겠는가... 냉기를 피하는 방법이라고는 서로의 온기를 나누는 것 뿐... 그 성균관에는 예쁘게 생긴 유생이 있었다. 그가 즐겨 읽던 게 '이소경'. 같은 방에 있떤 두 진사가 추위 혹은 다른 이유로 그 예쁜 유생을 안고 자겠다고 밤마다 그의 다리를 잡아당기며 다투었다. 그러다가 그만 여린 몸이 감당을 못하고 다리가 찢어져서 죽고 말았다더라. 그 이후로 날이 어둡고 비가 내리는 밤이면 죽은 유생의 이소경 읽는 소리가 들린다고 한다.


* 소과에 입학했다고 해서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성균관. 그 중 동서재에서 거관수학한다는 것은 대과에 급제하기만큼이나 하늘의 별따기였다. '하재생'이라고 일컬어지는 자들은 정식으로 성균관 입학 자격을 얻지는 않았지만 뒷문으로 들어온 자들을 말한다. 참고로 '상재생'은 정식으로 성균관 입학을 허가받은 유생들이다.

* 장원백 :
 대성전 마당의 나무로 과거 보기 전에 이곳 아래에서 낮잠을 자면 급제를 한다는 속설이 있음.
 ex) 귀형은 벌써부터 이 장원백 아래에서 용방(龍榜, 임금과 마주하다, 과거급제를 일컬음)을 대비하십니까?

안에 보이는 나무.. 는 아니고 실제로 대성전 안에 들어가보면 명륜당 앞의 은행나무만큼 큰 나무가 서있다.
그 아래 장원백에서 자야 급제를 한다는 속설이 있다.

유교가 엄연히 종교로 인정되고 있는 대한민국에서 성균관은 유학의 전통을 계승하고 있다.


성균관에서는 유교의 명맥을 보존하고, 또 계승하고 있다.

* 집춘문 : 창경궁과 성균관 사이에 난 문으로 임금이 거동할 때 사용.
 <- 창경궁과 성균관은 담 하나를 사이로 인접해있다.

* 서재에는 진사, 동재에는 생원이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당파싸움이 지속된 조선 후기에는 서재에는 노론이, 동재에는 소론, 남인, 소북이 지냈다.
 + 동재로 바로 통하는 문 : 전향문
   => 현재 대성전이나 명륜당으로 통하는 길을 가기 위해서는 전향문을 통해야 한다.

* 명륜당 뒷편에 있는 건물. 존경각(尊經閣) : 성균관 유생들을 위한 도서고
  <- (여담) 성균관대 내의 도서관 이름이 존경각이면 어떨까.. 중앙학술도서관은 조금은 딱딱하달까..


* 궐희(闕戱) : 공자를 황제로 둔 모의 조정 놀이. 황제의 말에는 무조건 복종.
  <- 마치 현대의 왕게임?!!

* 색장(色掌) : 성균관 재회의 간부로 오늘날의 학생회 임원. 서재와 동재 각각 두 명씩. 도합 네 명이 있었다.

* 신방례(新榜禮) : 성균관에 처음 들어온 유생들의 신고식. 궐희 등을 행함
 ex) 이루기 힘든 것들을 해오라 하고, 못하면 청계천 물에 빠트렸다 함.
 -> 이런 신고식 등을 불합리하고 고지식적인 것이라 생각하면 안된다. 한 인간이 새로운 집단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기존 집단에서의 분리 -> 변화 ->새로운 집단에의 적응' 의 과정을 거치기 마련인데, 이 신방례를 통해 성균관에 처음 들어온 유생은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나'로 태어나게 되기 때문이다.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