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사표

 조선의 킹 메이커. 흥선대원군의 일화 중 유명한 내용이 있다. 유약한 철종의 뒤를 이어 왕을 구하려던 차, 혈통상 가깝지는 않았던 이하응이 물망에 오르기 시작한다. 하지만 당시는 안동 김씨의 세도정치상황. 까딱하면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하응은 파락호 행세를 했다. 그는 누가 식은 전조각에 침을 뱉어 내던지면 그것을 얼른 주워 도포 자락에 닦아 크게 웃으며 게걸스럽게 먹어대는 모욕까지 감수했다. 마치 중국의 한신이 살기 위해 불량배의 가랑이를 긴 것처럼.. 때를 기다리며 인내하였고 이하응은 결국 고종을 왕위에 올리고, 자신은 대원군의 자리에 오른다.

 큰 그릇은 늦게 완성된다. 만약 이하응이 가깝지는 않지만 멀지도 않은 왕족의 신분을 십분 누리며 세상을 살았다면 그는 그저 역사 속의 한 왕족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그릇을 믿었고 인내하며 다가올 그날을 기다렸다. 와신상담하며, 그날의 치욕을 간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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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묵자흑, 근묵자적이라는 말처럼 사람은 주변 환경에 너무나 많은 영향을 받는다. '나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라고 묻는다면 내 주변에서는 '스펙은 이것을 쌓고.. 학점은 이정도 받고.. 어학연수는 어딜 가고..' 라는 식의 지극히 현실적이어서 우울한 대답만이 여러번 메아리쳐 온다.

 파스칼의 팡세에서 이런 글귀가 생각난다. '사람은 세상을 살아가는 데에 있어서 죽음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죽음을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서 그의 인생은 전혀 다른것이 될 것임을 알면서도.' 
 친구들에게 우스갯소리로 말했던 내용이지만, 나는 병상이나 집에서 조용히 잠들고 싶지 않다. 기말고사 전의 마지막 수업시간, 원형의 대형 강의실에서 휠체어에 앉아 많은 학생들 앞에서 수업을 하다가 수업이 끝날때 즈음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입니다. 그동안 수고 많았습니다.' 라고 말하며 얼굴을 떨구는.. 그렇게 생을 마감하고 싶다. 

 이러한 인생의 마무리를 위해 나는 해병대를 갔고, 유학을 준비하고, 책을 읽는다. 남들처럼 스펙에 목말라하지도 않고, 고시에 온 힘을 쏟아붇지도 않는다. 다만 20년 후 내가 교수가 되었을 때 학생들 앞에서 떳떳한 인물이 될 수 있게 삶을 준비해 나가고 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을 만나며, 또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나의 목표가 희미해짐을 느낄 때가 많다. 하지만, 마음을 새로이 다잡고 여기 나를 위한 다짐을 한다.




나는 교수가 될 것이다. 존경받는 멋진 교수가 될 것이다.

나는 깨우는 교수가 될 것이다. 학생들의 야망과 정열을, 그리고 젊음을 일깨울 것이다.
나는 책을 쓰는 교수가 될 것이다. 그리고 그 책은 민족을 대표하고, 민족을 만드는 책이 될 것이다.
나는 행복한 교수가 될 것이다. 학생들에게 사랑받고 존경받는 교수가 될 것이다.
나는 역사에 남는 교수가 될 것이다. 누군가 'Bae'를 말한다면, 그 사람의 연구.. 난해하지만 충분히 흥미있었다고.. 위대하지는 않았지만 그 분야의 한 획을 그었다고 기억되는 교수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 책을 읽자. 운동을 하자. 기도를 하자. 소설을 읽고, 철학을 읽자. 근육을 기르고, 지구력을 기르자. 항상 감사하며 나의 운명을 믿자.

나는 배은찬이다. 멋진 배은찬이다.
배교수! 지금은 잠시 쉬고 있는 것일 뿐이야. 앞으로의 머나먼 항해를 위해 준비 단단히 해 두라고! 배은찬 호 출항 15분전, 15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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